철거 앞둔 용산 40년 여관의 재생…치커리 호텔 실험
카페 어니언이 서울 용산 한남 재개발 구역에서 1982년에 문 연 3대 여관 '잠수장'을 개조해 시한부 호텔 '치커리'를 열었습니다. 2~5년의 짧은 수명 위에 카페·바·객실과 서도호·양혜규 등의 현대미술을 얹은 공간 재생 실험의 이야기를 정리합니다.
사진: Tao Yuan (새 창에서 열림) · Unsplash (새 창에서 열림)
곧 헐릴 운명의 건물에 새 호텔이 문을 열었다. 카페 어니언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40년 넘은 여관을 개조해 만든 ‘치커리 호텔’이다. 재개발이 예정된 땅 위에서 2~5년의 짧은 수명을 살아갈 공간에 현대미술과 카페, 바, 객실을 얹은 도전적인 재생 실험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남5구역 40년 여관 잠수장, 어니언 손에서 호텔로
치커리 호텔은 용산구 한남5구역 주택 재개발 정비사업 구역에 자리 잡은 건축물 재생 프로젝트다. 1982년에 세워져 3대째 여관 ‘잠수장’으로 운영되던 건물을 카페 어니언이 이어받아 고쳐 만들었고, 지난달 3일 일반에 공개된 뒤 정식 간판을 올렸다.
여관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았다. 긴 복도와 붉은 카펫, 손잡이까지 그대로인 방문 등 잠수장의 많은 부분이 호텔 안에 온전히 남아 있다. 공사가 시작되기 전날까지 영업을 이어가던 잠수장 주인은 마지막 날 눈물을 보였다고 알려져 있어, 공간의 역사가 그대로 프로젝트의 일부가 됐다.
재개발 인가 난 땅의 2~5년…사라지기 때문에 아름다운 실험
사업시행 인가가 난 재개발 구역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프로젝트의 수명은 정해져 있다. 유주형 어니언 대표는 주변에서 이 공간의 남은 기간을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으로 본다고 전했다. 흔히라면 투자를 꺼릴 조건이다.
그러나 어니언은 반대 논리로 이 선택을 설명한다. 유 대표는 “특이한 얘기지만, 사라지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우선은 오래 쳐다봤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철거 때 옮겨 갈 수 있는 가구와 미술품에만 투자하려 했지만 성에 차지 않아 결국 벽과 바닥에도 공을 들였다고 한다.
1층 카페·2층 바·3~4층 객실 8개…낡은 구조 위 현대미술
호텔의 구성은 낡은 뼈대 위에 새로운 층위를 얹은 형태다. 1층은 카페 치커리, 2층은 바 티타산, 3층과 4층에는 8개의 객실, 그리고 루프톱 공간으로 이어진다. 공간을 담당한 어니언 스튜디오는 디자이너 그룹 패브리커가 주축이며, 기획부터 시공까지 대부분 내부에서 도맡았다.
현대미술은 공간 전체를 관통한다. 입구는 서도호 작가의 작품으로 시작해 안과 밖의 경계를 나누고, 내부 곳곳에 류성실·양혜규·최하늘 등 작가들의 작품이 포진해 있다. 1층 카페와 다이닝 천장 보에는 함께 작업한 작가들의 친필 사인이 낙서처럼 쌓여 있는데, 유 대표는 이름이 쌓이면 그 자체가 역사이자 작품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역 소멸 해결이 궁극적 목표”…재생 행보는 이어져
이 프로젝트의 더 큰 그림은 도시와 지역의 생명력에 있다. 유주형 대표는 버려진 것들에 대한 애정을 공간으로 표현해 온 어니언의 궁극적 목표로 ‘지방 도시 소멸 해결에 일조하는 것’을 꼽았고, 카페를 넘어 호텔이 다음 콘텐츠라고 판단해 이번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어니언의 재생 행보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18일에는 한국식 보자기 포장과 전통 다방을 연상시키는 인테리어의 명동점이 문을 열며 화제가 됐다. 금속 공장의 성수점, 우체국의 미아점, 한옥의 안국점, 시장의 광장시장점에 이어 명동점과 치커리 호텔까지, 오래된 건물을 읽는 방식이 서울의 공간 문화를 이끄는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 이 글의 이미지는 실제 치커리 호텔이 아닌 일반 호텔 복도 모습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 치커리 호텔은 어디에 있나요?
- 서울 용산구 한남5구역 주택 재개발 정비사업 구역에 있습니다. 강변북로에서 용산으로 들어가기 직전 오른편에 보이는 아직 개발이 더딘 주택 지대로, 1982년에 세워져 3대째 여관으로 운영되던 '잠수장' 건물을 그대로 개조한 자리입니다.
- 왜 시한부 호텔이라고 부르나요?
- 건물이 사업시행 인가가 난 재개발 구역 안에 있어 언젠가 철거될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유지 기간을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으로 보는 관점이 많아 프로젝트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시한부 실험으로 불립니다.
- 어니언은 어떤 공간 재생을 해 왔나요?
- 2016년 금속 공장을 개조한 성수점을 시작으로 우체국 건물의 미아점, 한옥을 손본 안국점, 시장 내부의 광장시장점을 차례로 선보였고, 지난달 18일에는 명동점도 열었습니다. 오래된 건물의 맥락을 살리는 공간 재생이 어니언의 대표적인 방식으로 꼽힙니다.